현직 10년차 신문기자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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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의 나라' 미국이 '공학도의 나라' 중국을 이길 수 있을까

kim25kim 2026. 6. 27. 08:06

이병한 작가.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화면을 한번 보세요.

크롬 브라우저일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이 설명됩니다.

그런데 그 미국이, AI만큼은 자국 기업에게도 허가 없이 출시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자유시장의 나라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답은 중국에 있습니다.

 

 

법률가의 나라 vs 공학도의 나라 — 그리고 AI는 절차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이병한 작가의 책 <아메리카 탐문>과 <테크노-차이나 탐문>을 읽었습니다.

 

그는 두 나라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미국은 법률가의 나라. 중국은 공학도의 나라.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두 나라의 엘리트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미국 대통령의 상당수는 법학 출신입니다. 법률가의 세계관은 절차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결과보다 과정. 속도보다 정당성.

 

중국은 다릅니다. 시진핑은 공학도 출신입니다. 그 이전 주석들도 대부분 그랬습니다. 공학도의 세계관은 결과를 향해 달립니다. 느린 것은 틀린 것입니다.

 

이 차이가 AI 앞에서 결정적이 됩니다.

 

데이터센터 하나를 짓는다고 해보겠습니다. 중국은 선전에 대규모 AI 인프라를 1년 안에 완공합니다. 국가가 결정하면 됩니다. 시범 도시를 지정하고, 먼저 도입하고, 결과를 봅니다. 미국은 다릅니다. 데이터센터 하나 건설에 지역 주민이 반대 소송을 겁니다. 환경 영향 평가, 의회 청문회. 수년이 걸립니다.

 

AI 패권은 인프라 싸움입니다. 누가 더 빨리 더 많은 GPU를 돌리느냐의 게임입니다.

 

현재대로라면 법률가의 패배입니다.

 

출처:클립아트코리아

 

그래서 미국이 택한 방법 : 중국을 닮는 것

6월25일 샘 올트먼은 직원들에게 사내 메모를 보냈습니다. "GPT-5.6 사전 공개 기간 동안 정부가 고객을 검토해 접근권을 개별 승인할 것"이라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올트먼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른 기관의 승인 없이는 모델을 출시하지 말라."

 

AI 모델 허가제입니다. 정부가 접근권을 통제합니다. 민간 기업의 제품 출시에 국가가 개입합니다.

 

이것은 자유시장이 아닙니다. 국가 통제입니다.

 

법률가의 나라가 공학도의 나라 방식을 베끼기 시작한 겁니다.

 

역설이지만, 동시에 절박함의 표현입니다. 미국도 알고 있는 겁니다. 절차만 지키다가는 진다는 것을. 올트먼은 직원들에게 "정부에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방식이 아니다'라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기업은 저항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밀리고 있습니다.

 

중세엔 왕의 허락 없이 장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미국 정부의 허락 없이 AI 모델을 출시할 수 없습니다. 형태는 달라도 구조는 같습니다.

 

 

트럼프 2기의 본질 : 공학도들의 반격

트럼프 2기를 단순히 우파 정치의 귀환으로 읽으면 놓치는 게 있습니다.

 

피터 틸. 일론 머스크. JD 밴스 부통령. 알렉스 카프(팔란티어 CEO). 이들의 공통점은 우파가 아닙니다. 기술주의자입니다. 공학도적 세계관의 소유자들입니다.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AI 허가제를 밀어붙이는 동시에 규제 철폐를 외칩니다. 모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모순이 이들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이들이 원하는 건 규제 철폐 자체가 아닙니다. 법률가가 만든 규제를 없애고, 공학도가 만든 통제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리콘밸리 공학도들이 워싱턴 법률가 체제에 도전하는 반격입니다. "절차보다 결과를. 규제보다 속도를. 변호사보다 엔지니어를." 미국 안에서 법률가의 나라를 공학도의 나라로 바꾸려는 내부 혁명입니다.

 

성공할지는 모릅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단단합니다. 견제와 균형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법률가와 공학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그 결과가 AI 패권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것.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법률가의 나라가 공학도의 나라를 이길 수 있을까. 미국 스스로도 그 답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스스로를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출처:클립아트코리아

2024년엔 0개, 지금은 8개

이 싸움에서 한국은 제3자가 아닙니다.

 

앤트로픽에 이어 오픈AI까지. 미국 정부가 AI 접근권을 틀어쥐기 시작했습니다. 빅테크 모델에 의존하는 한국 기업과 공공기관은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 하나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닙니다. 2026년 과기정통부는 AI 대전환에 5조 1,000억 원을 배정했습니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이른바 '독파모'도 진행 중입니다. LG AI연구원·SK텔레콤·업스테이지·모티프테크놀로지스가 경쟁 중이며, 오는 8월 2차 평가 결과가 나옵니다.

 

숫자 하나가 이 모든 것을 압축합니다.

 

2024년까지 스탠퍼드대 AI 인덱스에 한국 AI 모델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2026년 현재, 8개입니다. 세계 3위입니다. 미국 50개, 중국 30개에 이어서입니다.

 

0개에서 8개. 1년 만의 변화입니다.

 

 

크롬으로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에게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구글,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이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퍼뜨리는 것도 전부 미국 빅테크의 플랫폼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현실을 부정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구글이 유튜브를 장악했다고 해서 한국이 네이버와 카카오를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종속되지 않을 최소한의 주권을 지키는 것. 그것이 현실적인 목표입니다.

 

법률가의 나라와 공학도의 나라가 AI 패권을 두고 싸우는 동안, 한국은 법률가도 공학도도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싸움에 지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0개에서 8개처럼.

 

완전한 AI 독립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과, 우리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 사이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일이, 지금 조용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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